중국 항주 소흥 강남유람기 메모

 강남(江南) 유람기


이 포스트는 일종의 메모다. 급하게 써놨던 메모를 생각 닿는대로 기록해서 올려둔다.


여행은 여유를 가장한 조급함으로 시작됐다. 김해공항은 주차장 예약이 없다. 자리가 있으려나 실시간으로 남은 주차장면을 체크하며 가느라 마음이 급하다. 8시반 비행기니까 2시간 전에 가도 여유롭지라는 첫마음과 달리 역시 당일엔 일찍 집을 나선다. 마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다. 

10월 16일 (1일차)
기내식은 불고기, 아들은 비행기 탄 것만해도 신이 나서 기내 음료로 콜라를 두 잔 받아 들었다. 이게 웰케 웃길까. 이번 여행 일정 짜고 예약하느라 가이드 노릇 하는 아내가 고생이 많다. 시간 지나면 까먹을까 봐 틈틈이 기록해 둔다.

점심은 홍차오역에서 환승 기차를 2시간 기다리며 해결했다. 우육면 한 그릇씩. 딸아이는 제 취향대로 매콤한 마라우육면을 고르고, 아내는 밥을 시켰다. 화장실에 들러보니 비로소 대륙에 온 실감이 난다. 내가 처음 중국에 왔던 20여년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화장실은 더럽다. 아들은 밖에서 쪼그려 앉아서 큰일 보는 게 난생처음이라 바지에 소변이 약간 묻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큰 일을 본게 처음이라고. 그렇구나 나는 엉덩이가 닿는 것 보단 그게 나은 세대인데. 

붉은색 커다란 역 간판 글씨가 눈에 박힌다. 간체라 다 읽히진 않는데 건실한 특유의 내용이겠지. 이 붉은 글씨가 가장 인상깊다. 화장실에 남자 소변기에는 이 표어가 자주보인다. 향전일소보문명일대보. 





기차 타고 항저우로 가는 길, 아이들에게 창밖을 보라며 산이 하나도 없다고 일러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습지는 적었다. 예전에 상하이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탔을 땐 온통 습지였던 기억인데. 1등석이라 그런지 물도 챙겨주고 간식 상자도 준다. 들어있던 죽순절임이 매콤새콤 짭조름한 게 아주 맛있다. 가족은 아무도 안먹지만 역시 차 안의 중국인들도 다들 그걸 까먹고 있다. 말린 복분자도 별미다. 그렇다. 나는 중국에서는 살이 빠지지 않지. 다른 나라에서는 항상 살빠져 돌아오지만 여긴 중국이다. 한국음식이 1도 그립지 않던 거기에 또 왔다.



항저우 동역에 내려 디디추싱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는데 차창 밖 도시 풍경이 꽤 인상적이다. 택시 요금이 매우 저렴하다. 디디가 정말 최고다. 역시 영어는 전혀 안통하지만 택시기사에게 슬쩍 말을 걸어보았다. "항저우 인구가 얼마요?" 손짓으로 '이, 얼, 산, 쓰' 세어보이더니 600만이란다. 그 중국 특유의 손짓이다.

숙소는 만족스럽다. 인테리어도 감각적이고 위치도 훌륭하다. 테라스에서 서호가 곧장 내려다보이진 않지만 아침 먹는 식당에 가면 뷰가 좋다.

서호는 넓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꼬리 끝이 검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닌다. 아들의 정신은 온통 물고기로 갔다.


저녁은 서호천지의 '와이포지아(外婆家)'로 갔다. 생선과 돼지고기 요리를 골고루 시켰다. 가장 먼저 나온 피딴이 의외로 별미다. 입 짧은 딸아이까지 군말 없이 집어먹는다. 집에서 먹던 피딴을 생각해보니 뭘 먹은건가 싶다.



식사 후 거대한 쇼핑몰 in77을 둘러보았다. 규모가 매우 크다. 딸아이는 별 컨셉의 브랜드 티셔츠를 하나 골랐다. 중국에서 꽤 인기인지 길거리에 핑크색 종이가방을 든 사람들이 흔하게 보인다. 아들은 세상에서 제일 높이 튄다는 공을 사더니 연신 튀겨대며 걷는다.

아들이 고른 누가샌드를 사 와서 숙소에서 먹었다. 갓 만든 우유 누가인데 물엿을 굳힌 것처럼 딱딱하다. 팝업스토어도 많고 중국의 소비 트렌드도 빠르고 대단하다.
하루 종일 더웠다. 방에 들어와 땀에 젖은 러닝을 벗으려다 밤바람 쐬러 나가려고 그냥 입고 나섰는데, 웬걸 밤이 되어도 습하고 덥기는 매한가지다.


10월 17일 (2일차)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조식 식당 풍경이 좋아 서호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한참을 먹었다. 서호는 봐도 봐도 좋다.
9시 반 넘어 나섰는데 햇볕이 너무 따가워 아들은 긴팔을 벗기고 반팔로 갈아입혔다. 아내는 미처 반팔을 챙겨오지 못해 난감해한다. 

또 공을 튀긴다. 애들이 튀기다가 댕댕 건물 밑 폐허가 된 지하로 공이 굴러갔다. 좀비나올것 같은 장소, 특유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훅 난다. 이 놈의 공을 어서 잃어버리던지 해야지.

뇌봉탑은 웅장했다. 2000년대 들어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옛날 기단이 남아 있어서 보존하고 있는데 규모가 원래도 꽤 컸을 듯 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오르니 서호의 수려한 제방들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백제, 소제 다 보인다.


갈 때 탄 디디 기사는 운전은 거칠어도 사람은 참 순박했다. 마른 체구에 턱이 살짝 나온 단신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순한 인상이다. 뇌봉탑 입구에 차를 댈 수가 없어 길가에 잠시 세웠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내가 얼른 내리지 않고 내가 자꾸 말을 걸었다. 매우 당황해 하는 걸 몰랐는데 알고 보니 뒤에 차들이 줄줄이 밀리고 곁에 공안이 서 있었다. 공안이 다가오자 기사가 놀라 급하게 차를 몰고 가는데 뒷문 열고 가는 걸 내가 얼른 닫아 줬다. 그냥 내빼듯 헤어지기 뭐해서 어떻게든 인사를 제대로 나누고 가려던 건데, 나중에 다른 중국인들 보니 그냥 다들 내리고 폰으로 결재만 하더라.

뇌봉탑 안의 목조 양각 조각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층마다 불교와 도교의 설화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위층은 불교, 아래층은 도교 이야기다. 백소정이 우산을 건네고 불로초 같은 영생의 약을 구하는 장면들이 생생하다. 나중에 찬찬히 유래를 찾아봐야겠다.

탑을 나오다 산사나무 열매 탕후루를 샀다. 진짜 탕후루네. 아주머니가 "산자"라고 부르는데 우리 발음이랑 거의 같다. 한 꼬치에 25위안. 산사 맛이 궁금해 샀더니 딸아이는 한 입 베어 물고는 시큼하다며 맛없다고 투덜댄다. 결국 딸이 화내고 나도 화내고, 우리식의 탕후루를 먹고 싶다는 걸 중국에서 산사나무 열매 먹여 볼려던게 화근이었다. 딸 탕후루는 내가 다 먹었다. 약간 떫고 새콤한 맛이다. 나중에 시장에 가니 산사 열매를 생으로 파는 좌판도 보이더라. 딸은 안 먹었지만 뭐든 잘 먹는 아들은 제 몫을 잘 먹는다.

아들이 자전거를 타자고 졸라 알리페이를 켰는데 결제가 안 되어 일단 타게 했다. 그런데 이번엔 딸아이가 핸들이 돌아간다며 징징대기 시작한다. 결국 아들만 뇌봉탑 나오는 길에 잠깐 태웠다. 칭얼대는 딸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여행 이틀 만에 부녀 싸움이 났다. 물론 얼마 안 가 금방 풀렸지만. 아들만 자전거 탔네.

남송어로 골목은 볼거리가 넘쳤다. 길바닥에서 떡 치는 풍경도 보이고, 집 앞 평상마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카드게임에 열중이다. 딸아이에게 어울리는 비단 치파오를 한 벌 사 입혔다. 얇아서 살이 비치길래 속바지까지 이웃 가게에서 샀다. 참 곱다. 점원들이 아들에게도 치파오를 대주며 귀엽다고 연신 말을 건넨다.

점심은 오래된 양고기 노포에서 먹었다. 가격이 전반적으로 착하다. 양전갈탕과 작작면을 시켰다. 딸아이는 새로 산 치파오에 국물이 튈까 봐 쇼핑백을 목에 두르고 조심조심 먹는다. 양전갈탕은 양 등뼈를 뻘겋게 끓여낸 전골인데 '라부라(맵게 해줄까)' 묻길래 맵게 해달라고 했다. 주문이 꼬였는지 만두인 줄 알고 시킨 건 뽀얀 설렁탕 같은 국물로 나왔다. 작작면은 한국 자장면보다 훨씬 입에 맞았다. 덜 달고 투박한 된장 풍미가 살아있어 화학조미료 맛이 안났다. 양고기와 민물생선을 함께 푹 삶아낸 탕도 있었는데, 고기와 생선을 한 그릇에 내는 조합이 꽤 흔하게 보인다.

목이 말라 찻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주문 시스템을 몰라 진땀을 뺐다. 여기도 테이블 QR코드로 주문해야 했다. 이 작은 찻집은 중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합석을 한다. 먹고 난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테이블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일어서는 게 신기하다. 차 맛은 훌륭하다. 홍차를 기본으로 블렌딩한 메뉴가 다양하다. 커피 일색인 우리네 카페 골목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한약방 거리도 흥미로웠다. 길을 헤매며 낡은 공공아파트 단지도 지나치고 진짜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재래시장도 구경했다. 먹거리가 지천이다. 사탕수수 즙을 한 잔 사서 마셨는데 달달하면서도 풀내가 진했다. 딸아이는 한 모금 먹고 학을 뗀다. 대체 뭘 먹을거냐? 오산(우산)으로 빠지는 골목길을 잘못 들었다가 한 할머니가 지키는 낡은 문방구에서 잠자리채를 하나 샀다. 아들의 득템.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살갑게 맞아주신다. 이 할머니가 영어 제일 잘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더 쏘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천근만근이라 길가에서 디디를 호출했다. 정체가 극심한 구간이라 차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피로가 몰려와 의자에 앉아있는데, 바로 앞 호텔 앞 길이 순식간에 야외 무대로 바뀌더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배우 한 사람이 일인 노래를 하는데 대나무 조각을 딱딱 두드리며 칠언절구를 읊조리듯 노랫가락을 뽑아낸다. 근처에 예술 관련 회관이 있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나? 기다리면서 공연 잘 봤다. 이런 류의 노래는 이후에 종종 들렸다. 



공연이 끝날 즈음 부른 택시가 도착했다. 디디를 부르니 일반 택시가 오기도 했다. 택시도 디디로 콜을 잡는 모양이다. 기사 이름은 '제붕'. 볼살이 두툼하고 체구가 듬직해서 언뜻 건달처럼 보였는데 입을 떼자마자 사람이 그렇게 순할 수가 없다. 서툰 영어로 "트래픽 잼?" 하고 운을 떼며 손가락으로 1, 2, 3을 짚어가며 오늘 토요일이라 막히는지 평일에도 이런지 물었더니 용케 알아듣는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가 러시아워란다. 우리보다 퇴근 시간들이 빠른 모양이다.

어제 봐두었던 숙소 바로 옆 번화가의 동파육 식당으로 갔다.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유서 깊은 노포인데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단다. 대기표를 쥐고 서성이는데 한 중국인 모녀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7~8인용 대형 테이블 번호표가 있으니 함께 합석해서 들어가잔다. 덕분에 조금 일찍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앞쪽 사거리를 걷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 살다 살다 횡단보도를 그렇게 빽빽하게 건너는 인파는 처음 보았다. 도쿄 시부야도 명함 못내밀겠다. 신호가 끊겨도 사람 물결이 멈추질 않는다.

중국인 모녀에게 추천받은 매운 소고기 요리도 주문하고, 청경채를 꼭 맛보고 싶어 박초이라고 해도 안되고 한자로 '백채'를 써가며 설명했더니 점원이 백김치(물김치) 사진을 들이민다. 나중에 알았지만 청경채는 청채구나. 결국 포기하고 추천 메뉴 상단에 있던 동파육과 거지닭(진흙구이 닭), 새우 요리를 시켰다. 밥을 두 공기 시켰더니 고봉밥으로 나와 다 못 먹을 뻔했다.
모녀는 광둥성의 소도시에서 왔다고 했다. 둥근 눈매에 광대가 아래쪽에 있다. 딱 남방 사람 인상이다. 상하이부터 우전, 항저우까지 5일간 여행 중이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다. 영어를 조금 구사했고, 한국 예능 <런닝맨>의 열렬한 팬이었다. 우리가 부산에서 왔다니 대뜸 영화 <부산행>을 외치며 반가워한다. 아이들이 학교 빠지고 여행 왔다고 하니, 엄격한 중국 학제 탓인지 무척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식사를 마치고 건너편 유니클로 앞 사거리에서 음료를 샀다. 매장 안은 시원하지만 자리가 없어 야외 벤치에 앉았는데 음료가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중국은 빈자리를 맡아두기가 참 어렵다. 잠깐만 엉덩이를 떼도 자리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 와중에 좌판 짐을 든 잡상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자꾸 물건을 권하길래 "팅부동" 했더니 무어라 쏘아붙이며 돌아선다. 
아내는 음료 주문 순번이 계속 뒤로 밀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카운터로 가 "빨리빨리!"를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점원이 그제야 허둥지둥 잔을 내주더란다. 살구홍차와 망고 스무디를 들이켰다. 달고 시원하다. 빈 플라스틱 컵은 버리지 않고 챙겼다. 물고기 잡을 때 어항으로 쓰려고. 

밤이 어둡다.
아내와 딸은 유니클로에 반팔 옷을 사러 들어가고, 나와 아들은 낮에 산 잠자리채를 들고 서호 호숫가 정자로 나갔다. 서호의 야경은 기가 막혔다. 먼 산등성이를 따라 경관 조명이 은하수처럼 켜지고, 정자와 버드나무마다 조명이 그윽하게 드리웠다. 9시 무렵이 되자 전등을 끄는 모양이다.



아들은 고기가 잘 안 잡혀 세븐일레븐에서 미끼용 새우과자를 한 봉지 사 들고 돌다리 곁으로 갔다. 1시간 넘게 뜰채질에 열중했다. 아내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지만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다. 숙소에 먼저 돌아가 있던 아내는 배터리도 떨어지고 연락이 닿지 않아 속을 끓였다고 한다. 그 사이 우리는 물웅덩이에서 송사리 한 마리, 그리고 다리 밑에서 길쭉한 피라미 사촌 같은 물고기 두 마리와 투명한 새뱅이 새우를 기어이 건져 올렸다. 꼬리 끝이 검은 놈은 끝내 잡지 못했지만.
밤 10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들어왔다. 야시장은 구경도 못 했다.




10월 18일 (3일차)

이른 아침 서호로 조깅을 나갔다. 일본 세라복을 입은 학생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코스프레도 아니고. 백제(白堤) 둑길을 따라 뛰었다. 태극권을 연마하는 노인들,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무리, 기괴한 체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땀 흘려 달리는 조깅족들이 뒤섞여 독특한 활기를 띤다. 쉬엄쉬엄 4킬로미터 남짓을 뛰고 돌아왔다. 7시 반이 채 안 된 상쾌한 아침이다.




호텔 조식은 매일 감탄스럽다. 특히 새우 요리가 일품이다. 찻잎과 함께 볶아낸 용정하인(龍井蝦仁) 민물새우 볶음도 맛있고, 오늘 조식에 나온 통통한 새우도 달다.


오전 10시쯤 호텔을 나와 선착장 정자 2층에 있는 한푸 체험관으로 향했다. 아내와 딸이 분을 바르고 머리를 올리는 동안, 나와 아들은 잠자리채를 들고 서호 한복판으로 나선다.
물가에서 잠자리채 제일을 한다. 아들은 물고기를 잡고 나는 옆에 벤치에 앉았다. 잡은 물고기가 뭐냐고 이름 아냐고 물어본다. 아침엔 주변에 다들 나이가 지긋하다. 할아버지 두분이 친구 분이신 듯한데 내가 물고기 이름 묻자 서로 토론시작. 모르겠는지 사진을 찍어서 휴대폰에 물어본다. 그래도 답이 안나온다. 그만 해도 되는데, 계속 아들이 잡은 다른 물고기를 보시더니 물고기 이름을 사진 찍어 검색해 주시려 애를 쓰신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스마트폰 화면에 손가락으로 한자를 써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젊은이들이라면 번역기 앱을 들이밀었겠지만, 노인들은 중국어로 한참 말하다 내가 전혀 못알아 먹는 거 같으면 정갈한 글씨를 써서 보여준다. 나는 한자세대는 아닌데 서예 한자 배웠던게 간간히 유용하다. 한국인하고 필담하는 것도 그들 입장에서도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한자를 쓰는지, 여행은 단체로 온 건지 가족끼리 온 건지 한참을 묻고 답했다. 
그사이 아들은 납자루 두 마리를 낚아 올렸는데 등지느러미 모양이 살짝 달랐다. 어르신이 '부이동(不同, 같지 않다)'이라고 적어주신다. 내 폰이 세신 폰이냐고 해서 못알아 들으니 三星을 써 준다. 삼을 세라고 읽는게 우선 신기했다. 내가 애플이라고 했더니 말이 안통한다. 시과라고 해도 안통하고 사과라고 해도 안통한다. 애플은 화과였다. 한국에서도 아이폰이 귀하냐고(비싸냐고) 물으셨다. 본인들의 오포(OPPO)와 샤오미 폰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징거미새우를 잡았을 땐 암수 구별(자웅) 이야기로 한참 웃었다. 자웅도 결국 한자보고 알았네. 암수를 말한건데 무슨 公자를 계속 써줘서 무슨 새우와 관련된 고사 얘기 하는 줄 알았다. 어르신들은 서호 한가운데 석등이 뜬 '삼담인월(三潭印月)'을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석 삼(三)' 자를 '세'로 발음하시던데 남방 방언인가 원래 발음인가 했는데 "세"라고 다들 읽더라. 가시기 전에 76세, 84세라고 나이를 알려줬다. 결국 끝까지 통성명은 안했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간 40분이 흘렀다. 얼른 아내에게로.






꽃단장을 마친 아내와 딸을 데리러 2층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분칠을 하고 비단옷을 둘러쓴 열 살 딸아이는 너무 어른같고, 아내도 딴사람처럼 예뻤다. 예쁜 옷을 입어 기분이 한껏 들뜬 딸아이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사진 기사가 찍어준 사진은 보정까지 하자 진짜 잘 나오더라. 이래서 다들 찍는구나.


점심은 하이디라오 가게로 갔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키며 먹었다. 아내의 오후 계획은 엉망이 되었지만 입은 더없이 호사를 누렸다. 양념장 코너에서 별별 소스를 다 제조해 맛보았다. 오리발, 돼지 뇌까지 시켜보았다. 뇌는 식감이 너무 무르고 부드러워 결국 몇 점 못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근데 아내가 잘 먹는다. 통통하게 살아 움직이는 새우와 굴, 전복은 그냥 회로 집어먹고 싶을 만큼 싱싱했다. 중국 식당에 오면 늘 우리 테이블만 상다리가 부러져라 음식을 쌓아두고 먹는 것 같다. 현지인들은 다들 단품 서너 개로 조촐하게 식사를 즐긴다. 후식으로 나온 노란 멜론과 포멜로 과일, 달콤한 흑당 음료까지 싹 비우고 나니 4시가 넘었다. 저녁밥은 건너뛰어야 할 판이다.



디디를 잡아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달렸다. 기사에게 영어로 운을 뗐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팅부동" 세 글자뿐,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래도 4시 반 마감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불법 좌회전까지 감행해 준 덕에 4시 20분에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청사 안에서 오랜만에 한국인 여행객들을 마주쳤다. 60대로 보이는 남성 무리와 여성 두 분이었다. 김구 선생이 피신했던 은신처인 줄 알았는데 김철 주석 등이 머물던 집무 공간이었다. 야무진 인상의 현지 여성 해설사가 아주 똑똑하고 차분하게 역사를 짚어주었다. 청사 건물 자체가 오랜 근대 유산이라 그런지 중국 젊은이들은 건물 외벽을 배경으로 힙한 카페 사진을 찍듯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발을 떼자마자 수위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 육중한 대문을 걸어 잠갔다.

임시정부를 나와 아침에 달렸던 서호 둑길을 따라 걸었다. 발바닥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삼담인월과 악왕묘, 저녁의 '인상서호' 공연까지 다 욕심을 냈더니, 아내가 뇌봉탑 때부터 가자고 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이제 와서 왜 그러냐며 타박을 놓는다. 요새 자꾸 깜빡깜빡하고 기억이 왜곡되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다. 눈치를 보는 아내를 보며 결국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며 관람하기로 타협했다. 유람선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모터 소리가 요란하고 몸도 녹초였다. 하지만 호숫가 가로수와 빌딩들에 조명이 하나둘 켜지는 야경만큼은 참 근사했다. 배에서 내리니 아침의 무더위는 씻은 듯 사라지고 바람이 꽤 쌀쌀해졌다.

악왕묘 쪽으로 걸어가며 디디를 부르려 했으나 다리가 너무 아팠다. 걷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내 꼴을 보며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프고 짜증이 인다. 6시가 훌쩍 넘어 악왕묘는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 
디디를 기다리는 길가 맞은편에 국립서화미술관 같은 건물이 열려 있길래 잠시 들어가 멋진 서화를 감상했다. 손님은 우리뿐인데 지키는 직원만 여러 명인 게 참 방만하다 싶었다. 
잡아탄 디디 기사 할아버지 입에서 "송(宋)"이라는 단어가 스치듯 들렸다. 악비가 송나라 장수라는 뜻이었다. 내가 왜 악비를 춘추전국시대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을까. 저녁에 아들에게 송나라 명장이라고 바로잡아 주었다.

7시 40분 인상서호 공연장에 닿았다. 암표상 같은 호객꾼이 싼 표가 있다고 접근하길래 의심을 거두지 못했지만, 흥정 끝에 표를 무사히 구해 앞줄에 앉았다. 
공연은 스케일이 대단했다. 서호의 실제 수면을 무대 삼아 수백 명의 배우가 펼치는 군무와 음악이 압도적이었다. '백조의 호수' 발레에 몽환적인 영상이 덧입혀지고, 드뷔시의 '달빛' 선율이 밤 호수에 흐를 때는 숨이 멎는 듯했다. 마지막에 수면 아래서 거대한 산 모양의 조형물 세 개가 솟구쳐 오르는 연출은 장관이었다.
아들은 중간부터 곯아떨어졌고, 추위를 타는 딸아이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밤 9시, 공연이 끝나고 쏟아져 나온 인파 탓에 디디가 도통 잡히지 않는다. 빈 택시를 간신히 잡아탔지만 목적지 소통이 꼬여 몇 분 달리다 기사가 미안하다며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했다. 왜 못 간다는 건지 끝내 알아듣지 못했다. 길 건너 찻집에서 딸아이에게 따뜻한 음료를 사주려 했으나 밤에는 칵테일만 판다고 해서 허탕을 쳤다. 결국 다시 디디를 불러 타고 돌아오는 길, 기사에게 말 한마디 붙여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숙소에 오자마자 밤 10시에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 내가 제일 먼저 곯아떨어졌다. 여자들은 진한 화장을 지우느라 한참이 걸렸다고 한다. 새벽 3시에 눈이 떠져 메모를 정리한다.


10월 19일 (4일차)

새벽 3시에 눈을 떴다가 뒤척이다 6시 반에 아들이 부스스 일어나길래 손을 잡고 숙소를 나섰다. 어제 못 본 악왕묘가 7시 반 오픈이라 아침 산책 삼아 걸었다. 함께 주변을 관찰해본다. 서호의 청설모는 한국 것과 다르게 생겼고, 비둘기도 갈색 깃에 흰 꼬리, 날개 끝에 검은 띠가 둘러진 특이한 종이다.
호숫가 바닥에 커다란 붓으로 물 글씨를 쓰는 노인을 구경했다. 지나가던 현지 젊은이들은 옛 번체자를 읽지 못해 머리를 긁적였는데, 내 눈에는 보배 보(寶) 자를 비롯해 여덟 글자가 훤히 다 읽혔다. 젊은이들은 진짜 옛 한자는 못읽는구나.

큰길로 나가 디디를 부르려는데 눈썰미 좋은 아들이 소리쳤다. "아빠, 여기 어제 왔던 임시정부 앞이야!" 숙소에서 가까웠네.
악왕묘에 7분 일찍 도착해 문 앞 해태상을 구경했다. 입안에 굴러가는 돌 여의주에 손가락을 쏙 집어넣으며 장난을 쳤다. 7시 반 정각, 문이 열리자마자 1등으로 입장했다. 오픈런이다.
사당 깊숙한 곳에 악비와 그의 아들 악운(岳雲)의 봉분이 나란히 솟아 있었다. 벽면에는 악비의 어머니가 아들의 등에 새겨주었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 네 글자가 웅장하게 박혀 있다. 아들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웃옷을 훌렁 걷어 올리고 등짝을 보이며 포즈를 취한다. 나중에 사진에 글씨를 합성해 주기로 약속했다. 정원의 고목들도 한국에서 보지 못한 특이한 수종이 많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악왕묘를 나와 길을 건너니 어젯밤 굳게 닫혀 있던 죽소원(竹素園)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대나무와 구멍 숭숭 뚫린 남방 특유의 태호석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정원이었다. 물가 찻상에 노인들이 한가롭게 앉아 차를 마시는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 넋을 잃었다. 
죽소원 뒷길로 나오니 어젯밤 인상서호 공연을 보았던 호숫가가 바로 이어졌다. 밤새 무대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 옆 다리가 바로 소제(蘇堤)의 시작점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조식을 먹었다. 다진 소고기 찹쌀밥이 들어간 딤섬과 훈제오리, 공심채와 시금치의 중간쯤 되는 나물 볶음, 만둣국과 토마토 계란 볶음까지 든든하게 비워냈다. 식당 입구에서 방 번호를 "우이링링(5100)"이라고 말했는데 직원이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어 괜스레 뿌듯했다.

오늘은 첸탕강 남쪽 빈장 지구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차를 타고 경항대운하를 건너고, 첸탕강은 깊은 지하 해저터널로 건넜다. 강폭이 얼마나 넓은지 터널을 한참 동안 달렸다.
새 숙소에 도착하니 통창 너머로 첸탕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강 건너편으로 알리바바 본사를 비롯한 초고층 빌딩 숲이 끝없이 도열해 있다. 상하이 와이탄보다 강폭이 훨씬 넓고 건물 간격도 널찍널찍하다. 고맙게도 얼리 체크인을 해 주어 방에 짐을 풀고 잠시 눈을 붙였다.

낮 12시가 넘어 수향 마을 시싱고진(西興古鎭)으로 향했다.
아들이 제비나비처럼 검고 푸른빛이 도는 예쁜 나비를 채집망으로 낚아챘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건 나방이었는데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나비중에 하나였다. 흙탕물이 흐르는 좁은 수로를 따라 옛 명청 시대 목조 가옥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다. 진나라 시절 군사 요충지이자 절동운하의 물산 집결지로 번성했다가 1920년대 철도가 비켜 가며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이다. 관광지화가 덜 되어 인적이 드물고 고즈넉했다.


지도에서 찾아지는 아무 로컬 식당에 들어가 마파두부, 건두부 삼겹살 백육 볶음, 가지튀김, 피딴을 시켰다. 가지튀김만 빼고 나머지 요리가 상상을 초월하게 매웠다. 알고 보니 마파두부 메뉴 옆에 고추 그림이 3개나 그려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지만, 기름진 돼지비계와 건두부, 바삭하고 달콤한 가지튀김, 그리고 잘게 으깨어 밥에 슥슥 비벼 먹는 피딴의 조화는 훌륭했다.
식사 후 구멍가게 할머니에게 음료수 값을 물으니 "우뎬우(5.5위안)"라고 하신다. 못 알아듣고 멍하니 있으니 스마트폰 계산기에 5.5를 찍어 보여주신다. 관하 수로를 따라 늘어선 옛 골목길을 조용히 걸었다.

디디를 타고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근처 신시가지로 이동했다. 거리가 대단히 깔끔하고 주민들의 행색도 여유롭고 세련되어 보인다. 스타벅스 옆 루이싱 커피에서 시원한 대용량 음료를 사 들고 야외 광장 벤치에 앉았다.
남매는 광장에서 탱탱볼 하나를 가지고 1시간 넘게 뛰어놀았다. 바닥을 탕탕 치며 허공 높이 솟구치는 공을 따라 깔깔대는 아이들. 14,000원 주고 산 장난감치고 이번 여행 최고의 효자 상품이다. 아들은 이 공이 자기 인생에서 다섯 번째로 소중한 친구라고 했다. 첫 번째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니 "아빠!"라고 답해 가슴이 뭉클했다. 


날이 흐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기온이 27도까지 오르고 습해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두꺼운 옷을 입고 뛰던 아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저녁은 근처 간단한 분식 식당(소취)에서 때우기로 했다. 우리 분식식당 같지는 않네. 그냥 식사가 된다. 배추 고기탕, 오골계탕, 오리고기 덮밥을 시켜 배불리 먹었다. 5시가 넘자 빌딩들에서 퇴근 인파가 쏟아져 나온다.
숙소로 돌아가는 디디 기사는 먼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2008년 무렵 산둥성에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평소 차를 타고 가며 신기한 것을 두 가지 발견했다. 하나는 도로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며 인식하는 시스템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호등의 잔여 초수가 내비게이션 화면과 오차 1초도 없이 완벽하게 연동되어 운전자가 대기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군용 판초 같은 위장막을 씌우고 루프에 라이다 센서를 단 무인 자율주행 시험 차량도 한 대 목격했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첸탕강 변으로 밤 산책을 나갔다. 지하 통로를 헤매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강변 광장으로 빠져나왔다.
강변 바람이 시원하다. 어디선가 버스커가 부르는 포크송 '남산남(南山南)'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남송어로에서 들었던 그 멜로디다. 이곳이 바로 옛날 유튜브에서 아들과 함께 보았던 '첸탕강 역류 파도(용왕의 물길)'가 들이닥치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강변 게시판에 거대한 해일처럼 물길이 솟구치는 사진 자료가 걸려 있어 아들과 흥미롭게 들여다보았다.
돌아오는 길 쇼핑몰에 놓인 피아노를 아이들이 잠시 연주했다. 짝퉁 폴로와 짝퉁 무인양품 간판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밤 10시 전에 곯아떨어졌다.






10월 20일 (5일차)

항저우를 떠나 샤오싱(소흥)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으나 문을 연 식당이 없어 헤매다 작은 골목 식당을 찾았다. 훈둔(만둣국), 계란 볶음밥, 닭고기 국수, 소고기 국수를 시켰다. 밥투정을 하려던 딸아이도 고슬고슬한 볶음밥 맛에 푹 빠져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사 후 아들과 동네 슈퍼(초시)에 들러 복숭아 음료수를 사고, 아내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나는 전통 두유 가게에서 따뜻한 두유 한 봉지를 샀다. 각자의 취향대로 아침 음료를 챙겨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항저우 동역으로 가는 디디 기사는 귀주성이 고향이라고 했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틀어주고 내 서툰 중국어 질문에도 성심껏 답해 주어 내릴 때 팁을 넉넉히 쥐여주었다. 항저우가 중국에서 3번째로 큰 경제 도시라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기차 시간까지 1시간 넘게 남아 역 안의 '디코스(덕극사)'라는 중국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치킨을 먹었다. 소스가 빠진 담백한 치킨버거를 먹으며 아이들에게 동양과 서양의 역사,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 치수(治水)와 대륙 인구 팽창의 역사에 대해 한참 설교를 늘어놓다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부랴부랴 3번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기차가 도착하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뒤엉켜 우르르 밀려 들어간다. 2등석은 1등석보다 확실히 좁고 특유의 사람에게서 나는 중국 냄새가 났다.

샤오싱북역에 내려 디디를 탔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기온 31도, 습도 94%.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가득하던 항저우와 달리 이곳은 예스러운 골목과 낮은 건물들이 이어진다.
예약한 아투어(Atour) 호텔에 도착했다. 방에 냄새가 좀 났다. 큰 방이 없어 방을 바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직원이 외출한 사이 꼼꼼하게 환기와 청소를 해 주어 밤에는 아주 쾌적해졌다.

가장 얇은 옷을 챙겨 입고 루쉰의 옛 생가인 '루쉰고리(魯迅故里)'로 향했다. 3시 반 예약인 줄 알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인은 여권만 보여주면 예약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등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헉헉거리며 경내로 들어섰다. 올여름 최고 42.5도까지 치솟았던 양산의 폭염보다, 습도 94%인 오늘의 샤오싱이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사방이 개방된 그러나 에어컨은 켜져있는,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얼음 음료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루쉰의 셋째 동생이 미생물·생물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전시된 곤충 표본에서 아들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물결무늬 대형 나방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기념품 가게에서 대나무 새총을 하나 사 쥐여주고, 루쉰의 옛 저택과 그가 유년 시절 뛰놀던 채소밭 백초원(百草園)을 둘러보았다.



저녁은 루쉰의 단편소설 <공이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100년 전통의 '함형호텔(함형주점)'을 찾아갔다. 허름한 주막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거대한 규모의 고풍스러운 식당이었다.
회향콩, 튀긴 취두부, 소흥삼선탕, 매간채 삼겹살찜(매간채토육), 생선 요리 등을 골고루 주문했다. 15년산이라는 황주 잔술도 한 잔 시켰다.
붉은 끈으로 꽁꽁 묶인 게 요리와 간장게장 스타일의 요리가 있었는데 단맛이 도는 붉은 게가 훨씬 맛있었다. 튀긴 취두부는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바삭한 두부튀김 같아 아들과 내가 거의 다 먹었다. 회향을 넣고 삶은 콩도 짭조름하니 별미였고, 14도짜리 따뜻한 황주는 달콤하면서도 묵직하게 취기를 끌어올렸다. 빈속에 몇 잔 들이켜니 머리가 핑 돈다.
탕 안에 든 꺼끌꺼끌한 묵 같은 것이 궁금해 아들에게 물어보게 했더니 직원이 뭐라고 하는데 못알아 들으니  '저피(猪皮, 돼지껍데기)'라고 한자로 적어준다. 돼지껍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내는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남은 건 내 몫이 되었다. 생해파리 머리 부분을 오이, 진초, 참기름에 버무린 냉채는 꼬들꼬들하면서도 말캉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 앞 공이지 동상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루쉰기념관과 그가 공부하던 서당 '삼미서옥'을 다시 만났다. 책상에 새겨진 신(早) 자와 와신상담의 고사를 떠올리며 천천히 걸었다. 아내가 루쉰이 일본 유학 시절 러시아 문학에 깊이 심취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문체 밑바탕에 러시아 문학이 있었구나라고 이해가 된다.



대로변 광장으로 나오니 오래된 건물 2층 창문 대여섯 개를 무대 삼아 배우들이 노래하고 연기하는 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주변으로 날아드는 거대한 나방을 보며 아들은 또다시 채집 본능을 불태웠다. 광장 벽면에 담배를 물고 있는 거대한 루쉰의 벽화 앞에서 가족사진을 남겼다.
숙소로 돌아오니 방 안 냄새는 말끔히 가시고 에어컨이 17도로 시원하게 틀어져 있어 천국이 따로 없었다.




10월 21일 (6일차)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여행 중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기온이 어제보다 10도 가까이 뚝 떨어져 최고 21도, 최저 15도다. 반팔 차림으로 나섰다가 쌀쌀한 날씨에 깜짝 놀랐다.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살구와 자두를 섞어놓은 듯 은은한 메로나 맛이 나는 낯선 열대과일( 나중에 알았지만 인삼과 였다.)과, 단면이 별 모양인 끈적하고 아삭한 채소(오크라)가 인상적이었다. 플레인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서예의 성지, 왕희지의 '난정(蘭亭)'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주머니 디디 기사는 한쪽 다리를 시트에 반가부좌로 올린 채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옛날 총알택시를 탄 기분이었다. 
난정 입구 검표소에서 어른 2장 표를 내밀자 애들 표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와 딸만 먼저 들어왔고 아내는 다시 표 사러 간사이 검표원 아주머니들과 손짓 발짓으로 아이들 할인 규정에 대해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한참 이야기 한다. 중국어가 계속 는다. 딸아이는 새로 산 얇은 치파오를 입고 왔다가 추위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경내 연못 '아지(鵝池)'에는 왕희지가 사랑했다는 하얀 거위들이 실제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굽이치는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던 '유상곡수'의 현장은 경주 포석정을 쏙 빼닮았다.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 두 황제가 앞뒷면에 나란히 친필을 남긴 거대한 비석 앞에서 현지 가이드가 낭랑한 성조로 칠언절구를 읊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왕희지가 붓을 씻어 연못물이 먹물처럼 검어졌다는 '묵호(墨池)'에 다다랐다. 수초와 이끼로 검게 보이는 연못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아들이 소리쳤다. "아빠! 납자루야! 낙동납자루 색깔이랑 똑같아!" 잉어 떼 사이에 헤엄치는 납자루들을 용케도 찾아냈다. 
추워하는 딸아이를 위해 들고 있던 부직포 쇼핑백을 찢어 간이 팔토시를 만들어 끼워주었다.



점심을 먹으러 남송 시대의 옛 석교 '팔자교(八字橋)'로 이동했다.
디디를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분신 같은 탱탱볼을 튀기며 놀다가 실수로 물가에 빠뜨리고 말았다. 다리 밑으로 기어들어가 나뭇가지를 주워 간신히 건져 올렸다. 아들은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디디 기사는 한국인 손님을 반가워하며 청와대와 제주도에 가본 적이 있다고 번역기 앱으로 자랑했다. 차 안에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내가 좋아하는 중국 노래 '남산남'을 연달아 틀어주며, 근처의  식당 '심보가'를 추천해 주었다.

팔자교에 도착하니 새하얀 길고양이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다리 위에 올라서니 운하를 따라 늘어선 기와지붕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들은 다리 밑에서 잠자리채로 나비를 잡겠다며 허공을 휘젓고 있다. 세 줄기 물길이 모여드는 고즈넉한 옛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근처 주은래의 생가(조거)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심보가 입구는 좁아 보여서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 내부는 2층 규모의 큰 레스토랑이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여자 종업원이 엄청 친절하고 거의 곁을 떠나지 않고 서포트 해주려고 했다. 그리고는 나중에 통통하고 싹싹한 여성 직원이 추가로 와서 꽤 알아들을만한 한국어 번역기 발음으로 메뉴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설명해 주었다. 불고기 파스타라는 식의 번역기 돌린걸 읽어주는 투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친절한 식당이었다.
기름을 끓여 끼얹은 전통 흰살생선 황어(黃魚) 요리가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있었다. 쫀득한 당면에 소고기를 넣고 볶은 요리(이게 그 불고기 파스타라고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해주었던 메뉴)와 마파두부처럼 자작한 두부탕도 뚝배기 밑에 촛불을 켜서 내와 따뜻하고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친절한 직원이 문밖까지 달려 나와 아이들에게 샤오싱 풍경 마그넷과 과자 선물을 쥐여주었다. 뜻밖의 따뜻한 환대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바로 옆 주은래 기념관에 잠시 들렀다. 시골에서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온 현지 노인들이 가득했다. 한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스마트폰 조작을 부탁해 이것저것 눌러주었다. 중국인인줄 아나? 아내는 유독 중국인으로 오해를 많이 받긴한다. 인도에 가도 항상 chinese로 묻던데 왜 그런거냐? 나는 네팔리?라는 말도 들어보긴 했다. 이 정도면 인종차별 아닌가?



숙소로 돌아와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오후 5시쯤 다시 나왔다. 숙소 바로 앞 노신소학교에서 아이들이 붉은 스카프(마후라)를 두르고 하교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인근 옛 골목길로 들어섰다. 귤 노점을 하는 할머니가 옛날식 쇠 분동을 얹는 손저울로 귤 무게를 달고 계셨다. 지불은 QR코드 페이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광경이 참 묘했다.
10년산, 20년산, 30년산 항아리 황주를 시음해 보고, 커다란 독에서 나무 국자로 푹 퍼 담아주는 10년산 황주 한 병(100위안)을 샀다. 내가 커피컵에 황주를 넣고 빨대로 커피인척 마시면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집 황주와 완전히 비교할 수 있었는데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깊은 맛이 어제 식당에서 마신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골목길 끝까지 걷다 보니 가로수마다 주홍빛 풍등이 길게 매달려 밤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황주 아이스크림을 사 먹이고, 우리는 길거리 노점에서 검은색 튀긴 취두부를 한 컵 사 먹었다.
저녁 식사는 로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왕씨만두' 집으로 갔다. 손님들이 테이블마다 뼈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먹는 모습에 이끌려 들어갔다. 양고기 등뼈 찜과 갓 구워낸 야끼만두, 계란을 두른 두부 지짐만두를 시켰다. 양고기 등뼈는 뜯어먹을 살은 적었지만 양념이 맛있었고, 철판에 지글지글 부쳐낸 두부 만두가 아주 별미였다.
라면을 먹고 싶다던 아이들을 위해 신장 위구르족 부부가 운영하는 란저우 라면집에도 들렀다. 이슬람 모자를 쓴 주인이 직접 손으로 뽑아낸 면발에 맑은 소고기 육수를 부어낸 기본 라면을 아이들이 맛있게 비웠다.

돌아오는 길에 과일 노점에서 가장 큼지막한 두리안을 한 통 사 들고 왔다. 숙소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도 방 안 가득 특유의 진한 냄새가 번져나갔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다.







10월 22일 (7일차)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눈이 떠졌다. 방 안 가득 두리안 냄새가 진동한다는 가족들의 성화에, 세수를 대충 하고 나가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 쓰레기통에 껍질을 버리고 돌아왔다. 첫날 호텔에 방 냄새난다고 바꿔달라 해놓고, 결국 우리 가족이 두리안 냄새로 방을 가득 채우고 떠나게 되었다.




호텔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 먹었다. 국수 코너에서 쌀국수 면에 채소(청채)를 듬뿍 넣어달라고 주문하는 요령도 이제는 척척이다. 죽순과 어슷 썬 돼지고기 볶음이 참 맛있었다.

샤오싱 동역으로 이동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아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대나무 새총이 엑스레이에 걸린 것이다. 루쉰고리에서 기념으로 산 것이라 설명해도 공안은 완강하게 압수하겠다고 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고무줄만 빼버리면 그냥 Y자 모양 나뭇가지잖아?' 
다시 검문소로 가 번역기를 켜고 아주 정중하게 글을 적어 보여주었다. '아이의 소중한 여행 기념품입니다. 고무줄을 잘라낼 테니 나무 몸통만 가져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공안은 화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굳은 표정을 풀고는 칼로 고무줄을 툭 잘라 나무 자루를 아이 손에 쥐여주었다. 아내는 멀리서 내가 공안에게 끌려가는 줄 알고 걱정스레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고무줄 없는 새총을 건네받은 아들은 무뚝뚝해 보였지만 기뻤겠지??

상하이 홍차오역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이번엔 옆자리에 앉은 현지 아주머니가 보온병의 차를 꿀꺽꿀꺽 마실 때마다 땀구멍으로 차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정오 무렵 홍차오역에 도착했다. 비행기 시간(18:05)까지 여유가 있어 역 앞 대형 복합 쇼핑몰로 건너갔다.

점심 메뉴로 제대로 된 정통 마라탕을 골랐다. 양념 고기, 신선한 야채, 생고기를 각 칸에 담아 무게로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매운 마라탕과 토마토 탕을 시켰는데, 마라탕은 국물 없는 마라샹궈처럼 볶아져 나왔다. 혀가 얼얼하게 마비되는 강력한 본토의 맛이었다. 손질된 식용 개구리 고기도 몇 토막 넣었는데 쫄깃하니 먹을 만했다. 
베이커리에 들러 직장 동료들에게 돌릴 짭조름한 계란 빵을 샀다. 빵마다 무게를 달아 가격표를 다르게 붙여놓은 점이 참 합리적이고 인상 깊었다.

푸둥공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서쪽 하늘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활주로 너머 지평선으로 붉은 태양이 떨어지는 일몰이 펼쳐졌다. 안개 하나, 구름 한 점 없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내려앉는 석양은 내 평생 손에 꼽을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가족들과 함께 이 풍경을 눈에 담고 싶어 두리안 냄새를 풍기며 면세점을 기웃거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애타게 찾았지만, 결국 그 찬란한 일몰은 나 홀로 창가에 서서 바라봤다.




비행기가 30분 남짓 지연된 끝에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이륙하자마자 가족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비행 20분 만에 눈을 번쩍 뜬 딸아이가 지나가는 기내식 카트를 보며 "아빠, 나 자는 동안 밥 다 먹었어?" 하고 억울해한다. 장난기가 발동해 "응, 우린 벌써 다 먹고 저건 음료수 나눠주는 거야"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뒷자리 아이가 먼저 받은 키즈밀을 보고는 진짜인 줄 알고 입술을 삐죽 내민다. 곧이어 따뜻한 기내식이 눈앞에 놓이자 딸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상하이에서 부산까지는 순풍을 탄 덕에 1시간 20분 만에 닿았다. 
밤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마음만은 포근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찾아 짐을 싣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내일은 출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금요일이다.

사실 금요일 하루는 여행의 피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후가 되자마자 학교를 마친 아들을 태우고 밀양강으로 달려갔다. 서호의 물고기는 비록 눈으로만 담아왔지만, 우리는 가을빛 완연한 강물 속에 발을 담그고 특유의 에메랄드 빛 참중고기를 잡으며 여행의 남은 여운을 오래도록 나누었다.




No comments: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