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학과 배움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AI is Destroying the University and Learning Itself


(번역)오랫동안 인공지능을 둘러싼 소동을 무시해 왔다. 챗지피티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나는 회의적이었다. 기술적 유행에 열광하는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대학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교수 회의는 공포로 가득 찼다. 이제 표절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 이것이 대학 에세이의 종말인가, 다시 종이 시험지로 돌아가야 하는가 하는 걱정들이 쏟아졌다. 내 동료들은 마치 부정행위라는 것이 방금 발명되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더니 거의 하룻밤 사이에, 손을 휘저으며 걱정하던 이들이 손을 비비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학문의 종말을 예고하던 똑같은 교수와 행정가들이 이제는 자신을 'AI 준비된 교육자'로 급히 재포장하고 있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교실 내 AI 기술 구축'이나 'AI 리터러시 필수 과정' 같은 워크숍들이 비 온 뒤 죽순처럼 돋아났다. 표절에 대한 초기 공포는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는 체념 섞인 수용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급반전은 우리 캠퍼스만의 일이 아니었다. 23개 캠퍼스와 약 50만 명의 학생을 보유한 미국 최대 공립 대학 시스템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CSU)는 오픈AI와 1,700만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전력을 다했다. CSU는 모든 학생과 직원에게 무료로 'ChatGPT Edu'를 제공하는 전미 최초의 AI 역량 강화 대학 시스템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보도 자료는 개인화되고 미래 지향적인 학습 도구와 AI 기반 경제를 위한 학생들의 준비에 대해 장황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타이밍은 초현실적이었다. CSU가 이 거창한 기술적 몸짓을 선보인 것은 공교롭게도 예산에서 3억 7,500만 달러를 삭감하겠다고 제안한 시점과 일치했다. 행정가들이 AI 이니셔티브의 리본을 끊는 동안, 그들은 동시에 교수직과 전체 학과 프로그램, 학생 서비스를 폐지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의 교무처는 우리 노조인 캘리포니아 교수 협회(CFA)에 해고 가능성을 공식 통보했다. 예산 삭감과 행정부의 AI 열풍 사이에서 교수들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이 소식은 캠퍼스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노조가 해고 위협을 받은 바로 그 달에, 오픈AI의 교육 전도사들이 대학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자동화된 학습의 복음을 전파하며 교수들을 포섭하고 있었다는 점은 지독한 역설이었다. 수학적 계산은 잔인했고 대조는 극명했다. 오픈AI에는 수천만 달러를 쏟아붓는 동안, 수십 년간 헌신해 온 강사들에게는 해고 통지서가 날아갔다. AI가 생성한 텍스트의 확산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다.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문장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주체적인 의식이나 진실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AI 산문은 안전 가드레일 때문에 거세된 듯한 인상을 주며, 권위 있어 보이려고 짧고 직설적인 단어 대신 길고 라틴어 유래의 단어들에 의존한다. 그 스타일은 늘 뻣뻣한 비즈니스 캐주얼 톤에 갇혀 있다. 몸이 없는 AI는 감각적 세부 사항을 통계적 확률로 조합하며, 실제로 보고 느낀 이들에게는 어색한 표현을 남발한다. AI는 함의나 농담, 동기 등을 노골적으로 설명해버리기 때문에 독자가 추론할 하부 텍스트가 거의 남지 않는다. 이는 글쓰기에서 심리적 뉘앙스를 거세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단순히 정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구축하며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가는 고통스러운 사유의 과정이다. AI는 이 과정을 생략하게 만든다. 버튼 하나로 에세이를 얻는 학생은 결과물을 챙길지는 몰라도 비판적 사고력은 잃어버리게 된다. 대학이 지식의 공장이 되고 교육이 단순한 과업 완수로 전락하는 순간, 진정한 학습은 소멸한다. 대학들은 턴잇인(Turnitin)과 같은 AI 탐지기를 동원해 반격에 나섰다. 높은 오탐률, 비영어권 및 흑인 학생들에 대한 문서화된 편향성, 그리고 로봇을 로봇으로 상대한다는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뒤틀린 우로보로스와 같다. 대학은 AI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학생들은 AI를 사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학교는 부정행위에 패닉을 일으켜 이를 감시하기 위해 또 다른 AI 기업과 손을 잡는다. 이는 감시 자본주의와 기관의 직무 유기가 만난 결과이며,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은 군비 경쟁에 갇혀버렸다. 교수들은 이제 학생의 과제를 읽으며 이것이 학생의 생각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의 조합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불신은 사제 간의 유대를 파괴한다. 교육의 핵심인 지적 교감이 사라진 자리에 기계적인 검토와 감시만이 남게 된 것이다. 행정가들은 AI가 개인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고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 찬양한다. 하지만 교육은 효율성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배움에는 느린 호흡과 시행착오, 그리고 때로는 비효율적인 몰입이 필요하다. AI가 제공하는 지름길은 사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야 할 길 자체를 지워버리고 있다. 만약 대학이 단순히 학위를 따기 위한 통과 의례에 불과하다면 AI는 완벽한 도구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인간을 성장시키고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기르는 곳이라면 현재의 AI 열풍은 재앙이다. 대학들은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교육의 영혼을 팔아넘기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에서 1968년 학생들이 벌였던 투쟁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당시 학생들은 대학이 '지식 공장'이 되는 것에 반대하며 싸웠다. 그들은 교육이 단순히 시장에 공급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인간 해방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학은 기업 모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학생은 고객으로, 교수는 서비스 제공자로, 지식은 상품으로 취급된다. AI의 도입은 이러한 기업화의 정점이다. 인간 강사를 알고리즘으로 대체하고 복잡한 사유를 기계적 요약으로 대체하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효율적인 경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인간성 그 자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광경은 암울하다. 거대 기술 기업들은 교육의 미래를 장악하려 들고, 대학 행정가들은 예산 절감의 기회로 이를 반긴다. 학생들은 끝없는 경쟁 속에서 더 빠르고 효율적인 도구의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 모든 기술적 화려함 뒤에는 텅 빈 공동화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인간으로 남을 수 없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스스로를 해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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