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이슬람 난민과 빈공간(non-places)
Yemeni Refugees and the Non-Place
Nord ou Sud? (North or South?)
홍세화씨가 95년에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인상 깊은 한 대목이다. “Nord ou Sud?” 남쪽인가, 북쪽인가? 코리아에서 왔다는 이방인의 대답 끝에 어김없이 따라붙던 그 질문은, 단순히 지리적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복잡다단한 역사와 실존을 ‘이해 가능한’ 혹은 ‘위험한’ 두 개의 단촐한 범주로 환원시키려는, 문명화된 세계의 무의식적 폭력이었다. 존재하지만 인식의 지도에는 없는 나라, 그 안에서 온 사람은 남과 북이라는 기호로만 겨우 좌표를 얻는다. 그 외의 삶은 질문자의 관념의 영토 바깥에 존재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타자를 마주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며, 모든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는 ‘빈공간(non-place)’의 발견이다.
빈공간은 물리적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나의 세계 안에서 어떠한 의미의 관계망도 형성하지 못한 채 투명하게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예멘의 난민들이 제주 땅을 밟았다. 우리 사회는 이 빈공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그들은 전쟁과 기근을 피해 온 개개의 절박한 인간, ‘아흐마드’나 ‘파티마’가 아니었다. 그들의 고유한 이름과 얼굴, 각자의 사연은 순식간에 휘발되었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이라는 거대하고 균일하며 위협적인 기호만이 남았다. 예멘이든, 시리아든, 아프가니스탄이든 그 차이는 무의미했다. 우리는 그들을 구별할 필요도, 의지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그들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된 적이 없는, 말 그대로 빈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향한 혐오와 공포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처음으로 우리 사회의 인식 지도 위에 ‘주변부’라는 희미한 점으로나마 등재되기 시작했다. 존재의 완전한 무시에서, 위험하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타자로의 이동. 그것은 환대라기보다는 경계의 시작이고, 공존이라기보다는 관리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서글픈 ‘존재의 승인’이다.
타자를 빈공간에서 주변부로 끌어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진통을 동반한다. 안락한 무지의 상태가 깨지고, 나와 무관하다 믿었던 세계가 내 삶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작동하는 감정은 공포와 저항이다. 외부인의 유입은 공동체의 동질성을 위협하는 ‘침입’으로 간주되고, 개인의 안전에 대한 실존적 불안은 타자에 대한 배제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기제가 된다. 정부와 제도는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성적인 공론장을 마련하기보다는, 때로 그 불안에 편승하여 ‘우리’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 통일성과 순수성에 대한 강박이 클수록,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는 비례하여 커진다. 그 결과, ‘타자화(othering)’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이름 아래 정교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타자화의 본질은 복잡한 실체를 단 하나의 속성으로 환원하고 고착시키는 폭력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서 스스로를 정의할 권리를 박탈하고, 내가 만든 이미지의 감옥에 가두는 행위다.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은 더 이상 입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 ‘불법체류자’, ‘문명의 파괴자’와 같은 납작한 상징으로 소비된다. 이러한 범주화는 우리에게 세상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착각과 함께, ‘그들과 다른 우리’라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값싼 연대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외부인을 위험하고 미개한 존재로 낙인찍음으로써 얻는 내부의 결속은, 실은 우리 공동체의 미숙한 자기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참여와 연대, 이해와 헌신이라는 지난한 민주주의의 가치 대신, 도피와 생략, 혐오와 배제라는 편리한 선택이 득세한다.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하게 된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의 위축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능력의 퇴화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빈공간에서 걸어 나와 무대 구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계속해서 ‘타자’로 대상화하고 고정된 이미지 속에 박제함으로써 우리의 초라한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무대의 중심으로 초대할 용기를 낼 것인가. 타자를 중심부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관용을 베푸는 시혜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중심이 흔들리고, ‘우리’라고 믿었던 정체성의 경계가 재설정되는 혼란을 감수하는 일이다. 나의 안온한 세계 지도를 기꺼이 수정하고, 타인의 길이 나의 길과 교차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삶과 직접 닿지 않던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통해 그들의 고통에 연루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다. 공동체의 성숙은 얼마나 단단한 경계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연하게 경계를 확장하고 재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Nord ou Sud?”라는 질문은 2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에게 당도했다. 그것은 더 이상 파리의 이방인에게 향하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의 성숙도를 가늠하며 답해야 할 존재론적 질문이다. 우리는 외부의 타자를, 그리고 내부의 소수자를 마주할 때 여전히 남과 북, 선과 악,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의 감옥에 갇혀 있는가. 빈공간을 넘어, 주변부를 넘어, 마침내 타자의 고유한 얼굴과 목소리를 온전히 인정하는 사회. 그들의 등장이 우리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고 깊게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그러한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Nord ou Sud?”라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될 것이다.
- 휘트니 미술관에서, 2018
홍세화씨가 95년에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인상 깊은 한 대목이다. “Nord ou Sud?” 남쪽인가, 북쪽인가? 코리아에서 왔다는 이방인의 대답 끝에 어김없이 따라붙던 그 질문은, 단순히 지리적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복잡다단한 역사와 실존을 ‘이해 가능한’ 혹은 ‘위험한’ 두 개의 단촐한 범주로 환원시키려는, 문명화된 세계의 무의식적 폭력이었다. 존재하지만 인식의 지도에는 없는 나라, 그 안에서 온 사람은 남과 북이라는 기호로만 겨우 좌표를 얻는다. 그 외의 삶은 질문자의 관념의 영토 바깥에 존재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타자를 마주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며, 모든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는 ‘빈공간(non-place)’의 발견이다.
빈공간은 물리적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나의 세계 안에서 어떠한 의미의 관계망도 형성하지 못한 채 투명하게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예멘의 난민들이 제주 땅을 밟았다. 우리 사회는 이 빈공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그들은 전쟁과 기근을 피해 온 개개의 절박한 인간, ‘아흐마드’나 ‘파티마’가 아니었다. 그들의 고유한 이름과 얼굴, 각자의 사연은 순식간에 휘발되었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이라는 거대하고 균일하며 위협적인 기호만이 남았다. 예멘이든, 시리아든, 아프가니스탄이든 그 차이는 무의미했다. 우리는 그들을 구별할 필요도, 의지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그들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된 적이 없는, 말 그대로 빈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향한 혐오와 공포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처음으로 우리 사회의 인식 지도 위에 ‘주변부’라는 희미한 점으로나마 등재되기 시작했다. 존재의 완전한 무시에서, 위험하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타자로의 이동. 그것은 환대라기보다는 경계의 시작이고, 공존이라기보다는 관리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서글픈 ‘존재의 승인’이다.
타자를 빈공간에서 주변부로 끌어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진통을 동반한다. 안락한 무지의 상태가 깨지고, 나와 무관하다 믿었던 세계가 내 삶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작동하는 감정은 공포와 저항이다. 외부인의 유입은 공동체의 동질성을 위협하는 ‘침입’으로 간주되고, 개인의 안전에 대한 실존적 불안은 타자에 대한 배제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기제가 된다. 정부와 제도는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성적인 공론장을 마련하기보다는, 때로 그 불안에 편승하여 ‘우리’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 통일성과 순수성에 대한 강박이 클수록,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는 비례하여 커진다. 그 결과, ‘타자화(othering)’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이름 아래 정교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타자화의 본질은 복잡한 실체를 단 하나의 속성으로 환원하고 고착시키는 폭력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서 스스로를 정의할 권리를 박탈하고, 내가 만든 이미지의 감옥에 가두는 행위다.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은 더 이상 입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 ‘불법체류자’, ‘문명의 파괴자’와 같은 납작한 상징으로 소비된다. 이러한 범주화는 우리에게 세상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착각과 함께, ‘그들과 다른 우리’라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값싼 연대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외부인을 위험하고 미개한 존재로 낙인찍음으로써 얻는 내부의 결속은, 실은 우리 공동체의 미숙한 자기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참여와 연대, 이해와 헌신이라는 지난한 민주주의의 가치 대신, 도피와 생략, 혐오와 배제라는 편리한 선택이 득세한다.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하게 된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의 위축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능력의 퇴화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빈공간에서 걸어 나와 무대 구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계속해서 ‘타자’로 대상화하고 고정된 이미지 속에 박제함으로써 우리의 초라한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무대의 중심으로 초대할 용기를 낼 것인가. 타자를 중심부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관용을 베푸는 시혜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중심이 흔들리고, ‘우리’라고 믿었던 정체성의 경계가 재설정되는 혼란을 감수하는 일이다. 나의 안온한 세계 지도를 기꺼이 수정하고, 타인의 길이 나의 길과 교차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삶과 직접 닿지 않던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통해 그들의 고통에 연루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다. 공동체의 성숙은 얼마나 단단한 경계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연하게 경계를 확장하고 재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Nord ou Sud?”라는 질문은 2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에게 당도했다. 그것은 더 이상 파리의 이방인에게 향하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의 성숙도를 가늠하며 답해야 할 존재론적 질문이다. 우리는 외부의 타자를, 그리고 내부의 소수자를 마주할 때 여전히 남과 북, 선과 악,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의 감옥에 갇혀 있는가. 빈공간을 넘어, 주변부를 넘어, 마침내 타자의 고유한 얼굴과 목소리를 온전히 인정하는 사회. 그들의 등장이 우리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고 깊게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그러한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Nord ou Sud?”라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될 것이다.
- 휘트니 미술관에서, 2018
Nord ou Sud?
This poignant passage is from Se-hwa Hong’s 1995 book, The Taxi Driver in Paris: “Nord ou Sud?” North or South? Whenever a foreigner from Korea identified their origin, the inevitable follow-up was always this question. But this was never merely a matter of geography. Rather, it was an unconscious exercise of civilized violence—a way for the world to reduce the intricate personal history and existence of an individual into two simple, “comprehensible,” or “dangerous” categories. A country that exists, yet is unrecognized on the map of perception; for those from such a nation, their only coordinates are the symbols “North” and “South.” Any life outside of those signs exists beyond the territory of the questioner's imagination. This, at its core, is the most primitive form by which we confront the ‘Other’—and the very space where every tragedy takes root: the discovery of the ‘non-place.’
A ‘non-place’ is not merely a physical void. It is a space-time that clearly exists, yet remains transparent within my world—failing to form any meaningful network of relationships. When Yemeni refugees set foot on Jeju Island, Korean society was confronted, unflinchingly, by the reality of this non-place. These people were not desperate individuals fleeing war and famine—no longer “Ahmed” or “Fatima.” Their unique names, faces, and personal stories evaporated instantly, replaced by the monolithic, threatening symbol of “Islam.” Whether from Yemen, Syria, or Afghanistan, the specific differences became irrelevant. We felt neither the need nor will to distinguish them. Why? Because, until then, they simply had not existed as meaningful presences within our consciousness—in effect, they had been non-places. Ironically, it was only as hate and fear against them swept through society that they first appeared, faintly, as peripheral dots on our collective mental map. The shift was not from absolute disregard to genuine acceptance, but rather from complete nonexistence to a precarious presence—as an object of suspicion, not hospitality; as something to be managed, not integrated. This is the somber reality of the “recognition of existence.”
Drawing the Other out from the non-place to the periphery inevitably involves social turmoil. Once the comfort of ignorance is shattered and the world I once assumed unrelated to my own intrudes upon my personal boundaries, the first emotional response is fear and resistance. The arrival of outsiders is perceived as an “invasion” threatening communal homogeneity, and existential anxieties about security quickly become a powerful force justifying exclusion. Rather than genuinely addressing public fears and cultivating rational discourse, government and institutions often choose the easier path—amplifying the identity of “us” in response to uncertainty. The greater the obsession with uniformity and purity, the stronger the corresponding fear of the Other. As a result, “othering” begins to operate, intricately, as a societal defense mechanism.
At its core, othering is a violence that reduces a complex reality to a single attribute and freezes it in place. It deprives the Other of the right to self-definition, confining them in the prison of predetermined images. Once relegated to the periphery, these individuals are no longer multidimensional human beings. They become flat symbols: “potential criminal,” “illegal alien,” “destroyer of civilization.” Such categorization fosters two seductive illusions: that we can understand the world simply and clearly, and that a cheap sense of solidarity—born of our supposed superiority over “them”—suffices for community. But, in truth, the internal unity that comes from branding outsiders as dangerous and primitive is simply another expression of our community’s immature narcissism. The price is severe: instead of the arduous values of democracy—participation, solidarity, understanding, and dedication—convenient choices like avoidance, oversimplification, hate, and exclusion gain dominance. By relinquishing the intellectual effort to understand the Other, we lose even the opportunity to understand ourselves. The impoverishment of our imagination toward Others ultimately leads to the atrophy of our own capacity for self-reflection.
Now we must ask ourselves: What will we do with those who have stepped out from the non-place and now precariously occupy the margins of our stage? Shall we continue to objectify them as the Other, preserving our fragile sense of security by trapping them in fixed images? Or will we muster the courage to invite them to the center? Welcoming the Other into the center is not an act of benevolent charity. Inevitably, it requires the center to tremble, to tolerate the re-drawing of boundaries around the identities we thought defined us. It means willingly redrafting our mental maps, allowing the paths of others to intersect with our own. It means assigning meaning, through imaginative effort, even to spaces of life that previously did not touch us—and choosing, intentionally, to become vulnerable to their pain. The maturity of any community lies, not in how solidly it preserves its boundaries, but in how flexibly it can expand and reconfigure them.
The question “Nord ou Sud?” leaps from two decades past, arriving now at our own doorstep. No longer is it asked of the stranger in Paris; now it confronts our own society as an existential inquiry, pressuring us to gauge our own maturity. When we encounter outsiders—or internal minorities—are we still imprisoned in binaries of North/South, good/evil, us/them? Beyond the non-place, beyond the periphery, can we recognize the unique faces and voices of the Other in their fullness? Can we become a society that sees their presence not as a threat, but as an opportunity—one that broadens and deepens our world? Only when we move toward such a mature community will we, finally, forgo the impulse to ask anyone the presumptuous and violent question, “Nord ou Sud?”
- At the Whitney Museum, 2018
This poignant passage is from Se-hwa Hong’s 1995 book, The Taxi Driver in Paris: “Nord ou Sud?” North or South? Whenever a foreigner from Korea identified their origin, the inevitable follow-up was always this question. But this was never merely a matter of geography. Rather, it was an unconscious exercise of civilized violence—a way for the world to reduce the intricate personal history and existence of an individual into two simple, “comprehensible,” or “dangerous” categories. A country that exists, yet is unrecognized on the map of perception; for those from such a nation, their only coordinates are the symbols “North” and “South.” Any life outside of those signs exists beyond the territory of the questioner's imagination. This, at its core, is the most primitive form by which we confront the ‘Other’—and the very space where every tragedy takes root: the discovery of the ‘non-place.’
A ‘non-place’ is not merely a physical void. It is a space-time that clearly exists, yet remains transparent within my world—failing to form any meaningful network of relationships. When Yemeni refugees set foot on Jeju Island, Korean society was confronted, unflinchingly, by the reality of this non-place. These people were not desperate individuals fleeing war and famine—no longer “Ahmed” or “Fatima.” Their unique names, faces, and personal stories evaporated instantly, replaced by the monolithic, threatening symbol of “Islam.” Whether from Yemen, Syria, or Afghanistan, the specific differences became irrelevant. We felt neither the need nor will to distinguish them. Why? Because, until then, they simply had not existed as meaningful presences within our consciousness—in effect, they had been non-places. Ironically, it was only as hate and fear against them swept through society that they first appeared, faintly, as peripheral dots on our collective mental map. The shift was not from absolute disregard to genuine acceptance, but rather from complete nonexistence to a precarious presence—as an object of suspicion, not hospitality; as something to be managed, not integrated. This is the somber reality of the “recognition of existence.”
Drawing the Other out from the non-place to the periphery inevitably involves social turmoil. Once the comfort of ignorance is shattered and the world I once assumed unrelated to my own intrudes upon my personal boundaries, the first emotional response is fear and resistance. The arrival of outsiders is perceived as an “invasion” threatening communal homogeneity, and existential anxieties about security quickly become a powerful force justifying exclusion. Rather than genuinely addressing public fears and cultivating rational discourse, government and institutions often choose the easier path—amplifying the identity of “us” in response to uncertainty. The greater the obsession with uniformity and purity, the stronger the corresponding fear of the Other. As a result, “othering” begins to operate, intricately, as a societal defense mechanism.
At its core, othering is a violence that reduces a complex reality to a single attribute and freezes it in place. It deprives the Other of the right to self-definition, confining them in the prison of predetermined images. Once relegated to the periphery, these individuals are no longer multidimensional human beings. They become flat symbols: “potential criminal,” “illegal alien,” “destroyer of civilization.” Such categorization fosters two seductive illusions: that we can understand the world simply and clearly, and that a cheap sense of solidarity—born of our supposed superiority over “them”—suffices for community. But, in truth, the internal unity that comes from branding outsiders as dangerous and primitive is simply another expression of our community’s immature narcissism. The price is severe: instead of the arduous values of democracy—participation, solidarity, understanding, and dedication—convenient choices like avoidance, oversimplification, hate, and exclusion gain dominance. By relinquishing the intellectual effort to understand the Other, we lose even the opportunity to understand ourselves. The impoverishment of our imagination toward Others ultimately leads to the atrophy of our own capacity for self-reflection.
Now we must ask ourselves: What will we do with those who have stepped out from the non-place and now precariously occupy the margins of our stage? Shall we continue to objectify them as the Other, preserving our fragile sense of security by trapping them in fixed images? Or will we muster the courage to invite them to the center? Welcoming the Other into the center is not an act of benevolent charity. Inevitably, it requires the center to tremble, to tolerate the re-drawing of boundaries around the identities we thought defined us. It means willingly redrafting our mental maps, allowing the paths of others to intersect with our own. It means assigning meaning, through imaginative effort, even to spaces of life that previously did not touch us—and choosing, intentionally, to become vulnerable to their pain. The maturity of any community lies, not in how solidly it preserves its boundaries, but in how flexibly it can expand and reconfigure them.
The question “Nord ou Sud?” leaps from two decades past, arriving now at our own doorstep. No longer is it asked of the stranger in Paris; now it confronts our own society as an existential inquiry, pressuring us to gauge our own maturity. When we encounter outsiders—or internal minorities—are we still imprisoned in binaries of North/South, good/evil, us/them? Beyond the non-place, beyond the periphery, can we recognize the unique faces and voices of the Other in their fullness? Can we become a society that sees their presence not as a threat, but as an opportunity—one that broadens and deepens our world? Only when we move toward such a mature community will we, finally, forgo the impulse to ask anyone the presumptuous and violent question, “Nord ou Sud?”
- At the Whitney Museu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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